삼성전자가 가전 구독의 영토를 가정에서 병원과 호텔, 은행 등 기업으로 넓힌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한꺼번에 사느라 목돈을 들이는 대신 매달 비용을 내면서 제품과 관리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 초기에 들어가는 투자비용을 줄이고 이를 운영비용 성격으로 분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삼성전자는 28일 구독 서비스 출시 2주년을 맞아 기존 ‘AI 구독클럽’을 ‘삼성 AI 구독’으로 개편하고 기업 고객을 위한 ‘B2B 삼성 AI 구독’을 새롭게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구독의 무대를 기업·소비자간거래(B2C)에서 기업간거래(B2B)로 넓힌 것이다.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사업장을 열 때 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 등 필요한 가전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상당한 초기 비용이 들어간다. 여러 지점을 동시에 운영하거나 호텔·병원처럼 많은 가전제품이 필요한 사업장은 부담이 더 크다.
삼성은 이 비용 구조를 구독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제품을 처음부터 대량 구매하는 대신 구독을 통해 초기 투자비 부담을 낮추고 비용을 장기간 운영비 형태로 분산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초기 투자비가 줄어든 만큼 사업자는 확보한 자금을 다른 사업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사업 초기 자금 운용에 숨통이 트이면서 안정적인 운영은 물론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이날 미디어 브리핑에서 “사업을 하려고 식당이나 작은 사무실을 열 때 처음부터 제품을 모두 사면 굉장히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며 “구독을 이용하면 운영비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AI) 기능을 활용해 전기료 등 운영비를 절감하고 그 비용으로 다시 구독료를 내면서 운영하면 초기 투자비용이 줄어들어 성공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B2B 구독에서 특히 주목하는 곳은 제품의 안정적인 가동이 곧 영업과 직결되는 사업장이다.
임 부사장은 식당을 사례로 들며 “갑자기 에어컨이 끊어지면 장사가 되겠느냐”며 “제품의 문제나 성능의 문제가 바로 매출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긴급 대응 체제를 만드는 데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B2B 구독의 초기 공략 대상도 구체화했다. 공공임대주택과 기숙사, 숙박업소에서 시작해 의료·금융 분야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업 전용 ‘B2B 블루패스’를 내놨다. 기업 고객은 제품을 대량 도입할 때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최대 6년 무상 AS를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로지텍의 B2B 전문 엔지니어가 기업별 운영 환경에 맞춰 제품을 관리한다.
‘시간맞춤 집중케어’와 ‘48시간 긴급 출동’, ‘엔지니어 담당제’, ‘하나 더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은 영업이 끝난 늦은 오후 등을 지정해 여러 지점의 제품을 한꺼번에 관리받을 수 있다. 병원 등 의료시설은 AS를 접수하면 영업일 기준 48시간 안에 엔지니어가 방문하는 긴급 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안이 중요한 금융기관이나 시설에는 사업장별 담당 엔지니어를 배정한다.
구독 대상 제품도 기존 렌털 가전보다 넓어진다. 은행·병원·약국 등에서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뿐 아니라 에어컨과 소형 냉장고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숙박업소나 사무실에서는 PC와 모니터, 프린터, 시스템에어컨, 공기청정기 등으로 구독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직원 복지용 에어드레서 등도 구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여기에 여러 사업장의 가전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기업용 솔루션 ‘스마트싱스 프로’도 활용한다. 여러 지점이나 공간에 설치된 제품의 사용 현황을 통합 관리하는 방식이다.
삼성이 B2B 구독에 나선 데는 기업 고객의 요구도 작용했다. 임 부사장은 지난 6월 대규모 판촉 행사 당시 “많은 B2B 고객들이 ‘우리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동안 준비해온 것을 마무리해 이번에 새롭게 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 입장에서도 B2B 구독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기존 가전 사업은 제품을 판매하면 일단 거래가 끝나는 구조였다. 구독에서는 제품 판매 이후에도 배송과 설치, 점검, 수리로 고객과 수년간 관계가 이어진다.
더욱이 B2B 고객은 한 기업이 여러 사업장에 제품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어 한 번 확보한 고객과의 거래가 다른 제품과 사업장으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구독이 단순한 판매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장기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소비자 시장에서 구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현재 구독을 운영하는 전체 유통 경로를 기준으로 주요 가전 구매 고객 3명 가운데 1명가량이 구독을 선택하고 있다.
임 부사장은 이날 행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제품 출시가 아니라 서비스 출시를 위해 미디어 행사를 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의 가치가 하드웨어 자체의 기능과 성능을 넘어 교체·관리뿐 아니라 상담과 설치, AS 등 전체 편리성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삼성은 구독 자체를 독립적인 수익 플랫폼으로 키우는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임 부사장은 “단독 상품만 가지고 플랫폼화해 수익화하는 것까지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번 개편을 통해 개인 고객에 대한 구독 서비스도 강화한다. 신혼부부·1인 가구를 위한 ‘신혼 패스’와 시니어 고객을 위한 ‘이지케어 패스’를 신설하고, 관리 서비스 횟수를 조절해 가격을 낮춘 ‘방문케어 라이트’도 추가한다.
한편, 삼성은 구독 서비스 출시 2주년을 기념해 10월 31일까지 삼성닷컴, 삼성스토어, 전자랜드 등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최대 20% 구독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