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산업계의 주요 목표는 이른바 ‘추격자’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창조 경영’ ‘글로벌 경영’을 한 해 목표로 내세우며 세계 시장의 선도자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도 이 무렵이었다. 목표가 바뀌자 기업이 원하는 경영자의 모습도 달라졌다. 기존의 성공 방식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을 넘어 스스로 전략을 짜고 시장을 개척할 경영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이 문을 열었다. 첫 입학생 50명으로 출발한 서울대 MBA는 지난 20년간 국내외 주요 기업의 리더를 숱하게 배출하며 한국 기업의 글로벌 도약을 뒷받침하는 대표 MBA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주간·주말 과정을 합쳐 309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세계 최정상 경영대학 글로벌 네트워크인 GNAM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경영 환경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았다. 양홍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지난 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AI 시대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어떤 질문을 던질지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지식의 양보다 문제를 보는 시각과 판단력이 경영자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직의 존속과 번영을 책임져야 한다는 리더의 기본적인 사명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AI의 등장으로 필요한 능력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필요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 그런 일의 상당 부분은 AI가 대신할 수 있다.

AI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AI에 어떤 질문을 던질지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좋은 답을 얻으려면 첫 질문뿐 아니라 그다음 질문을 어떻게 이어갈지도 중요하다. 앞으로는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MBA의 가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지식 자체만 필요하다면 책이나 유튜브를 보거나 AI를 활용하면 된다. MBA에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하는지 서로 경험하는 것이다.

혼자 공부하면 자신의 문제 해결 방식에 갇히기 쉽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사례를 놓고 토론하면 ‘저 사람은 이 문제를 저렇게 보는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도 넓어진다. AI가 발전할수록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어떤 도구를 활용해 해결할지를 훈련하는 MBA의 역할은 오히려 중요해질 수 있다.

▷계속 변해야 한다. 서울대 MBA에서도 최근 AI 관련 과목을 늘리고 졸업시 받을 수 있는 AI 교육인증제를 도입했다.

서울대 MBA는 학생들에게 일정한 포인트를 주고 원하는 강의에 이를 배분하도록 하는 수강신청 비딩 시스템을 2012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최근에는 AI 관련 과목에 높은 비딩 포인트가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시대와 기술이 바뀌면 리더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지는 만큼 MBA 역시 계속 진화해야 한다.

▷세 가지를 꼽는다면 올바른 판단, 선한 의도, 그리고 실행할 용기다. AI는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빠르게 찾아주고 정리해줄 수 있지만 궁극적인 판단은 경영자가 해야 한다.

어떤 철학과 의도를 가지고 판단하느냐도 중요하다. 기업은 단순히 효율만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직원과 고객, 주주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고 사회적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옳다고 판단한 일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기업들이 실제로 맞닥뜨릴 중요한 딜레마다. 당장의 효율만 보면 초급 인력이 하던 일을 AI에 맡기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나중에 리더가 될 사람을 어디에서 키울 것이냐다. 기본적인 업무 경험과 훈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리더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업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AI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 리더를 육성한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필요한 투자가 될 수 있다.

―MBA 졸업생을 ‘사회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경영자의 판단이 왜 사회 시스템이 되나.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경영자는 자신이 내리는 의사결정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해야한다. 기업이 내리는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결국 사회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수업에서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한 예시로 미국 고속도로 출구 번호를 예로 들곤 한다. 1950년대에 생긴 미국의 고속도로 체계는 동서 방향은 짝수 번호, 남북 방향을 홀수 번호로 하는 등의 일정한 규칙이 있어 운전자가 이해하기 쉽고 한국 고속도로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 일부 고속도로는 출구에 1, 2, 3처럼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는 게 아니라 주 경계로부터의 거리를 숫자로 표시한다. 운전자는 출구 번호만 보고도 거리를 가늠할 수 있고, 중간에 새로운 출구가 생겨도 기존 출구 번호를 모두 바꿀 필요가 없다. 좋은 시스템은 사람들의 편의성을 개선하고 기업과 사회의 운영·관리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좋은 케이스다.

―20년을 숫자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의미 있다고 보는 성과는 무엇인가.

▷교육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결국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 서울대 MBA와 EMBA를 졸업한 많은 동문이 국내외 기업으로 진출해 리더로 성장했다. 그것이 지난 20년간 거둔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서울대 MBA는 전 세계 33개 주요 경영대학이 참여하는 GNAM에 한국을 대표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교육의 방향을 논의하는 스티어링 커미티에도 참여한다. 교육과 연구 측면에서도 아시아의 주요 경영대학으로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다.

▷교육 내용이나 교수진, 학생들의 수준에 비하면 서울대 MBA가 사회에서 받는 평가는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하버드 MBA를 나온 사람들이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더라도 서로가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인지 인정하는 것처럼 서울대 MBA에도 그런 공동체 의식이 더 강하게 형성됐으면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다. ‘서울대 MBA 출신과 같이 일해봤는데 정말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더라’는 경험이 쌓이면 학교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좋은 학생이 들어와 좋은 교육을 받고, 다시 사회에 기여하면서 더 좋은 학생들이 찾아오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

―11월 20일 열리는 20주년 행사가 그 공동체를 다시 묶는 계기가 될까.

▷그렇다. 20년이라는 시점은 하나의 마일스톤이다. 계속 앞을 향해 달리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11월 20일에는 동문들이 모여 지난 20년의 성취를 공유하고 미래의 방향을 함께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동문들이 서울대 MBA를 나왔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