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매매 프로그램으로 가상자산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꾸며 투자자를 유인하고, 가격을 끌어올린 뒤 보유 물량을 처분한 시세조종 혐의자들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거래소 상장을 유지하고 대형 거래소에 추가로 상장하기 위해 가장매매로 거래량을 부풀린 가상자산 운영사 임직원 등도 적발됐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제16차 정례회의에서 가상자산시장 불공정거래 사건 4건의 혐의자에 대해 고발 및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친형제가 각각 벌인 초단기 시세조종 2건, 타인 명의 계정까지 동원한 시세조종 1건, 가상자산 운영사 임직원 등의 부정거래·시세조종 1건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은 친형제인 두 혐의자가 각각 동일한 수법으로 여러 가상자산의 시세를 조종한 사례다. 이들은 물량을 빠르게 매집한 뒤 자동매매 프로그램(API)을 이용해 소액의 시장가 매수·매도를 반복했다. 거래가 빠르게 체결되면서 호가창이 깜빡이는 이른바 ‘호가창 반짝임 효과’로 일반 투자자의 관심과 매매를 유도했다.
동시에 수동으로 높은 가격의 지정가 매수 주문을 내 시세를 끌어올렸다. 목표 가격에 도달하면 낮은 가격의 매도 주문으로 보유 물량을 신속하게 전량 처분해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다. 금융위는 두 사건의 혐의자를 각각 수사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
세 번째 사건은 거래소의 API 주문 횟수 제한을 피하려고 타인 명의 계정까지 동원한 시세조종으로, 이번 4건 중 고발 대상이다. 혐의자는 시세조종 직전 가격 변동성이 컸던 가상자산 수십 개를 대량으로 미리 사들인 뒤 본인 계정과 타인 계정의 역할을 나눠 거래했다.
본인 계정에서는 수동 주문과 API를 이용한 고가 매수로 가격을 끌어올렸다. 타인 계정에서는 소액의 시장가 매수·매도를 빠르게 반복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후 미리 높은 가격에 내놓은 매도 주문이 순차적으로 체결되도록 시세를 올리면서 보유 물량을 처분해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네 번째 사건은 가상자산 운영사 임직원 등이 전문 매매업자를 고용해 거래량을 조작한 사례다. 이들은 국내 대형 거래소에 여러 차례 상장을 시도했으나 거래량 부족 등의 이유로 실패하자, 상대적으로 상장이 쉬운 중형 거래소에 먼저 상장한 뒤 거래량을 부풀린 혐의를 받는다.
수법은 다수의 법인 임직원 계정을 동원해 자신들이 통제하는 계정끼리 코인을 사고파는 가장매매였다. 이렇게 부풀린 거래량은 해당 가상자산 전체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당국은 이들이 조작된 거래량으로 기존 거래소의 상장 유지 요건을 허위로 충족하는 한편, 투자자를 유인하고 대형 거래소 상장 자격요건에도 활용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가상자산의 발행재단과 백서 내용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해외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발행재단은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했고 실제 발행·운영은 혐의자들이 설립한 국내 법인이 담당했다. 백서에 기재된 재단 관련 주요 인물들도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가공의 인물로 확인됐다. 금융위는 운영사와 실질 사주, 대표이사 등을 수사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거래가 많지 않던 가상자산의 거래량과 가격이 이유 없이 급증하거나 특정 거래소에만 거래량이 집중되는 경우 인위적인 거래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투자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발행재단의 실체가 불분명한 경우 실제 운영 주체와 유통 수량, 프로젝트 진행 경과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유사한 매매 양태 등 이상거래 감시를 강화하고 불공정거래에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