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을 8월 본회의 안건에서 제외하면서 연내 법안 통과 가능성이 한층 낮아졌다.
미 정부 셧다운 방지를 위한 예산 관련 법안 처리가 우선순위로 밀려 올라온 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의원들이 모두 지역구 활동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상자산 업계가 기다려온 시장구조 법제화는 또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월가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법안이 연내 통과되지 못할 경우 가상자산 시장이 추가로 조정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일(현지시간)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실이 공개한 미국 상원 본회의 의사일정에 따르면 정부 예산 및 셧다운 방지를 위한 예산 관련 법안(H.R.6500)이 주요 안건으로 상정됐을 뿐, 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인 클래리티법(H.R.3633)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 상원 본회의가 예산안과 행정부 인준 등 필수 법안 처리에 집중되면서 클래리티법의 8월 휴회 이전 본회의 처리 가능성은 사실상 크게 낮아진 셈이다.
미 상원의 공식 여름 휴회는 8월 10일부터 9월 11일까지로 예정돼 있어 본회의는 9월 중순 이후에나 재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휴회가 끝나더라도 연내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란 관측이 나온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상원 복귀 직후에는 9월 30일 회계연도 종료를 앞둔 세출법안과 임시예산안 처리가 최우선 입법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과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정치적 부담이 큰 클래리티법에 충분한 본회의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설령 9월 중순 이후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클래리티법은 수정안 심사, 최종 표결을 모두 거쳐야 하는 데다 상·하원 법안 문안 조정 절차까지 남아 있다.
연말에는 예산안, 국방수권법(NDAA), 세제법안, 인준안 등 필수 법안이 우선 처리될 가능성이 커 클래리티법이 후순위로 밀릴 개연성도 높다.
특히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려면 60표가 필요한데 공화당 의석은 53석에 불과해 최소 7명의 민주당 의원 지지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클래리티법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스테이블코인 이자·보상 문제는 초당적 절충안이 마련되면서 상당 부분 진전됐다.
수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보유하는 대가로 지급되는 예금이자형 수익은 금지하되, 결제·송금·거래 등 실제 활동에 연계된 보상은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공직자의 가상자산 이해충돌 규정과 소비자 보호, 디파이(DeFi) 규제 범위 등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 이견이 지속되고 있어 법안 전체의 초당적 합의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실제로 크리스 머피, 크리스 밴 홀런, 제프 머클리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지난달 병합된 수정안에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빠졌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월가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클래리티법이 연내 통과되지 못할 경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이 단기적으로 추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가우탐 추가니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클래리티법을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으로 평가하면서도, 연내 통과 가능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JP모건도 지난주 클래리티법의 연내 통과 가능성이 옅어지는 것을 두고 가상자산 업계의 핵심 규제 촉매 중 하나가 흔들리는 신호라고 경고한 바 있다.
예측시장 역시 정치 일정과 클래리티법 관련 이견을 반영해 연내 통과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Kalshi)에서 클래리티법의 연내 통과 가능성은 9월 이전 3.35%, 10월 이전 16%, 11월 이전 24.25%, 12월 이전 30.84%로 시간이 지날수록 소폭 상승하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서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클래리티법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SEC가 기존 권한 범위 내에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입법이 지연되더라도 SEC는 증권성 판단 기준, 거래소 규제, 공시체계 등 행정 권한을 활용한 규제 정비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같은 행정조치는 클래리티법과 같은 법률 차원의 관할권 정리와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디지털자산 산업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규제 명확성은 여전히 의회의 입법에 달려 있다.
만약 클래리티법이 12월 말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제119대 의회 종료와 함께 기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이 경우 2027년 제120대 의회에서 법안을 재발의한 뒤 상임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해 시장구조 법제화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