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오수환 기자 / 강나연 에디터]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이라는 호재는 과연 지속 가능한 유동성을 불러왔을까. 아니면 거래소가 내건 이벤트가 만든 일시적 착시에 불과했을까.
온체인 데이터 저장 프로젝트 아이리스(IRYS)는 지난 5월 업비트 상장 직후 국내 원화마켓 거래대금 1위에 오르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블록미디어 데이터팀이 분석한 결과 거래량이 폭발한 시점은 업비트의 트레이딩 이벤트 일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래대금은 상금 회차에 맞춰 두 차례 정점을 찍은 뒤,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상장 직후 72시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는 ‘상장 특수’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리스(IRYS), 기술은 앞섰지만 생태계는 아직 초기
아이리스는 데이터 저장과 스마트 컨트랙트 실행을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는 레이어1 프로젝트다. 기존에는 이더리움(ETH)처럼 스마트 컨트랙트를 실행하는 블록체인과 알위브(AR), 파일코인(FIL)처럼 데이터를 저장하는 네트워크를 함께 사용해야 했지만, 아이리스는 자체 가상머신(IrysVM)을 통해 저장된 데이터를 스마트 컨트랙트가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프로젝트는 2021년 번들러 네트워크(Bundlr Network)로 출발해 2024년 아이리스로 리브랜딩했고, 2025년 메인넷을 출시했다.
다만 기술적 비전과 별개로 실제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8월 5일 공식 탐색기 기준 네트워크 저장 용량은 약 280TB다. 스마트 컨트랙트 처리량은 초당 약 0.12건, 데이터 저장 거래는 초당 0건으로 집계됐다. 디파이라마(DefiLlama)에서도 아이리스 메인넷은 독립 체인으로 분류되지 않아 총예치금(TVL)과 네트워크 수수료 등 핵심 지표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이리스, TGE부터 업비트 상장까지
아이리스는 2025년 11월 토큰생성이벤트(TGE) 이후 해외 주요 거래소와 빗썸에 먼저 상장됐다. 이후 6개월이 지나 업비트 원화마켓에 신규상장되기까지의 주요 여정은 다음과 같다.
정점을 두 번 찍은 거래대금… ‘상금 회차’ 따라 움직였다
아이리스의 거래대금 흐름은 업비트의 ‘TOP 트레이딩 이벤트’ 일정과 일치했다. 업비트는 상장 당일 밤, 총 470만 IRYS의 상금을 걸고 이틀간(16일·17일) 누적 거래대금 순위 경쟁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벤트가 시작되자 거래대금은 폭발했다. 상장 당일 5위(1067억원)로 출발한 아이리스는 1회차 이벤트가 진행되던 5월 16일 오후 3시, 24시간 거래대금(스냅샷 기준) 2410억원(점유율 10.97%)을 터뜨리며 국내 원화마켓 전체 1위에 올라섰다.
이어 5월 17일 2회차 이벤트 마감 직전 찾아온 ‘2차 정점’에서 점유율은 11.95%로 다시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실제 24시간 거래대금은 1398억원으로 1차 정점 대비 42%나 줄어든 상태였다. 주말 사이 국내 원화마켓 전체 거래대금이 줄어든 영향으로 점유율만 높아진 ‘착시’가 나타난 것이다.
가격은 떨어졌는데 거래는 왜 늘었을까?
상장 첫날 장중 146원까지 올랐던 아이리스 가격은 16일 92.7원, 17일 80.8원으로 연이어 내려갔다(장중 고가 기준). 반면 토큰 거래량은 가격이 하락한 5월 17일 16억4000만 IRYS를 기록하며 상장 이후 최대를 나타냈다. 가격이 내리는데도 거래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가 끝나자 분위기는 빠르게 식었다. 24시간 거래대금은 5월 18일 오후 848억원, 19일 밤에는 328억원으로 감소했다. 거래량도 18일 8억5600만 IRYS, 19일 4억9200만 IRYS로 줄어 17일 기록한 최대치의 3분의 1 수준까지 축소됐다.
가격이 하락하는데도 거래량이 늘었다가 이벤트 종료와 함께 거래대금과 거래량이 동시에 급감한 흐름은 당시 시장의 거래를 이끈 동력이 프로젝트 자체보다 거래소의 트레이딩 이벤트에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금을 노리는 트레이더와 마켓메이커의 셈법
그렇다면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누가, 왜 거래를 반복했을까. 일반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수료와 슬리피지(체결 오차 손실)까지 감수하면서 매매를 이어갈 이유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고성능 트레이딩 봇(Bot)을 운용하는 전문 트레이더와 마켓메이커(MM)의 계산은 다를 수 있다.
- ‘수수료 0.05% vs 1등 상금 6000만원’의 차익거래
예를 들어 알고리즘 트레이더가 반복 매매를 통해 하루 100억원의 거래대금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업비트 거래 수수료(0.05%)는 약 500만원 수준이다.
가격 변동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거래 비용보다 이벤트 보상이 더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거래량 자체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이벤트라면 반복 매매를 통해 순위를 끌어올릴 유인도 충분히 생긴다.
- 대량 보유자에게 열린 유동성
이미 6개월 전 빗썸 상장 당시부터 상당한 물량을 보유했던 초기 투자자나 대량 보유자에게도 이번 이벤트는 유동성을 확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평소에는 대규모 물량을 한꺼번에 매도할 경우 가격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거래소 이벤트 기간에는 상금을 노린 단기 트레이더와 알고리즘 매매가 유입되면서 호가창이 두터워지고 거래 유동성도 평소보다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대량 보유자는 늘어난 유동성을 활용해 보유 물량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시장에 분산 매도할 수 있다. 이벤트 보상이 거래 비용의 일부를 상쇄한다면 현금화 여건도 평소보다 유리해질 수 있다.
거래소 “가격은 복합 요인 영향”
거래지원과 관련해 거래소들은 상장 심사와 이벤트가 각각 내부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업비트는 개별 종목의 거래지원과 이벤트 등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빗썸 관계자는 “거래지원 이벤트는 신규 디지털자산의 거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이라며 “신규 거래지원 직후 거래량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은 이벤트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외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자산 가격은 글로벌 시장 상황과 프로젝트별 토큰 유통·해제 일정, 거시경제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며 “거래지원 당시 투자 위험을 충분히 안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용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한편, 아이리스는 8월 5일 현재 업비트에서 21원에 거래되고 있다. 상장 당일 기록한 장중 고가(146원)와 비교하면 85.6% 낮은 수준이다. 상장 직후 아이리스를 매수했던 한 투자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상장 당일 160원 가까이 오르길래 훨훨 날아갈 줄 알고 탑승했습니다. 수직 낙하하길래 물을 좀 탔는데도 도저히 커버가 안 돼서 결국 손절했습니다. 이름이 예뻐서 날아갈 줄 알았더니, 날아간 건 제 계좌 돈이네요.”
데이터가 보여준 것은 프로젝트의 가치나 가격 상승이 아니라 이벤트가 만든 거래의 궤적이었다. 거래대금은 거래소가 만든 상금판을 따라 정직하게 움직였지만, 가격은 투자자들의 기대를 배신한 채 바닥으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