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63조원 규모 ‘초과 세수’를 국채 시장 안정과 민생 지원에 투입할 방침이다. 국채 발행 물량을 축소해 금리 상승에 따른 금융 시장 불안을 선제적으로 잠재우겠다는 메시지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0일 확대 거시재정금융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초과 세수 일부를 활용한 국채 발행물량 축소 등 필요한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채 발행 축소에 팔을 걷어붙인 배경에는 채권 시장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급등이 물가를 자극하면서 향후 금리 인상 우려가 지속하고 있어서다. 특히 국고채 3년물 금리는 마지노선으로 여긴 ‘4%’를 돌파한 상태다. 5대 시중은행의 5년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역시 지난 23일 기준 연 4.90~6.88%로 상단이 7%에 육박했다. 고금리는 가계의 막대한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위축 등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63조원에 달하는 초과 세수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재경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 재추계액은 478조6000억원으로 3월 추경 때 전망보다 63조2000억원 늘어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 영향이다. 법인세는 추경보다 35조원 늘어난 136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성과급과 특별배당 등 영향으로 소득세 역시 추경 대비 15조6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국고채 총발행 한도는 225조7000억원이다. 8월 누적 기준으로 162조3000억원이 발행된 상태다. 9월 경쟁입찰분 16조원을 반영할 경우, 잔여 발행 여력은 약 47조원이다.

만약 초과 세수 63조원 가운데 5조원을 국채발행을 축소하는 데 사용한다면, 10~12월 발행 물량을 월평균 14조원으로 낮출 수 있다. 이는 1~8월 월평균 발행물량 20조원 보다 약 30%가 줄어드는 수준이다.

정부는 국채를 만기 전 시장에서 사들이는 이른바 ‘바이백’도 예고했다. 신규 공급을 줄이는 동시에 유통 물량까지 회수해 과도한 금리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신호다. 이번 조치는 성장 투자에 무게를 뒀던 재원 배분을 일부 조정해 주목된다. 대표적인 사업이 미래대응기금이다. 내년 미래대응기금의 기본 재원으로 책정한 금액은 162조3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사업비로,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축소에 활용하고,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 자금으로 남겨 운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부가 물량을 축소하고 일부 바이백을 실시하더라도, 중장기적 대책은 필요하다. 장기채의 주요 매수자인 보험사가 고령화에 따른 보험금·연금 지급 증가로 신규 투자 여력이 제약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유 재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해, 신규 국채 발행을 축소하고 채무 상환에 추가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초과 세수의 일정 부분을 미래대응기금에 추가 적립할 것으로 보인다. 필요시 재정 마중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이 부총리는 “초과 세수를 국민의 삶과 밀접한 분야인 주거, 일자리, 서민금융 등 3대 핵심 사회정책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은 기금 신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를 찾은 이 부총리를 향해 미래대응기금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초과 세수는 영속적이지 않고 일시적인데, 지출은 한 번 늘어나면 줄일 수 없는 영속적인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세수가 늘었다면 국민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