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환산 40%대라는 달콤한 수익률을 내걸고 투자자를 모았던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연계증권(ELS)이 최근 코스피 급락 탓에 조기 상환에 잇따라 실패하고 있다.

ELS는 특정 주식이나 지수가 정해놓은 평가 시점에 일정 수준 이상을 기록하면 약속한 쿠폰 수익을 제공하는 금융상품이다. 조건을 달성하면 예금이나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매력적인 상품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증시 약세로 기초자산 가격이 떨어져 만기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원금 손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코스피 약세가 계속되면 과거 4조6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자 손실을 불러왔던 홍콩 ELS 사태가 재발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23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발행된 ELS 가운데 삼성전자 단일주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종목은 725개, 금액으로는 2조544억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가 기초자산인 ELS는 같은 기간 749개, 1조945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둘을 합하면 4조원어치나 된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LS는 1881개(5조3067억원)가 발행돼 가장 규모가 컸는데, 코스피200에서 삼전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하는 만큼 사실상 두 종목의 가격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지난 6월 9000선을 넘었던 코스피가 5000선으로 고꾸라지며 이들 종목의 기초자산 가격도 폭락했다는 것이다.

ELS는 기존에 약정한 평가일에 기초자산 가격이 약속한 기준을 충족하면 원금과 쿠폰 수익을 조기에 지급한다.

증권사들은 삼전닉스 주가가 고공행진하는 양상에 맞춰 연환산 30%, 높게는 40%대 수익률을 내건 ELS를 대거 내놨다.

7월에 대규모로 발행된 ELS는 3개월 뒤인 이달 조기 상환 여부가 결정됐는데, 두 종목의 주가가 급락한 탓에 조기 상환이 잇따라 불발됐다.

미래에셋증권이 지난 7월 9일 발행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연계 ELS는 첫 평가일인 이달 6일 조기 상환에 실패했다.

두 종목의 평가가격이 모두 최초 기준가격의 85% 이상일 때 세전 연 40.6%의 수익률을 지급하는 상품이었지만 평가 당일 SK하이닉스 종가가 178만4000원으로 상환 기준인 185만8100원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도 조기 상환이 불발됐다. 지난 7월 20일 삼성증권이 선보인 코스피200 단독형 ELS는 지난 16일이 첫 평가일로, 기준 1080.36의 90%인 972.32 이상이어야 조기 상환이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수가 878.16로 마감하면서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다.

7월 발행분에 이어 3개월이 주기인 8~9월 출시 상품도 오는 11~12월에 첫 조기 상환 평가를 앞두고 있다. 국내 증시 회복이 늦어지거나 추가 조정이 발생하면 투자금 회수가 계속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만약 기초자산 가격이 발행 당시 정해둔 기준가 대비 특정 비율 미만으로 떨어지는 ‘녹인(knock-in)’ 현상이 발생하고 만기까지 정해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ELS의 만기는 보통 3년이다.

당초 목표대로 기초자산 가격이 올라 조기 상환에 성공하면 투자금의 1% 수준인 발행·판매 보수를 반복해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증시 호황기를 맞아 증권사들이 앞다퉈 발행에 나섰던 측면이 있다.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2024년 발생한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ELS 사태가 악몽으로 남아 있다.

당시 주요 은행은 2021년 중국 경기 호조로 지수가 고공행진을 하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를 대량 판매했다. 그러나 만기 시점인 2024년 중국의 빅테크 규제와 부동산 침체로 H지수가 고점 대비 무려 60% 가까이 급락해 무려 17만개 계좌에서 총 4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은 시장 변동성이 클때 ELS 상품을 대거 발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처럼 주가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증권사가 헤지(리스크 회피)를 위해 기초자산인 개별주를 매도하는 만큼 하락이 더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