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금융지주가 올해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뒀지만 연말 임기가 끝나는 주요 은행장들의 거취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경영 실적만 따지면 현직 수장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금융권을 뒤흔든 해킹 사고와 고객정보 유출로 경영진의 내부통제 역량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까지 인사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대규모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 5조8000억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신한금융 역시 누적 순이익 5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첫 ‘5조 클럽’을 조기에 달성했다.

하나금융도 역대 최대 누적 순이익을 달성했으며, 우리금융은 전년보다 이익 규모가 줄었지만 두 분기 연속 1조원대 순이익을 올렸다.

이 같은 호실적은 은행권의 견조한 이자이익이 뒷받침했다. 예금금리 상승과 저원가성 예금 감소로 조달 부담이 커졌지만 대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자산을 확대하면서 이자이익 증가세를 이어갔다. 반면 증시 조정과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주식 거래 수수료와 유가증권 관련 이익 등 비이자이익은 전 분기보다 감소했다.

4대 금융지주의 3분기 누적 순이익 합계는 17조원을 웃돌았다. 증권업계에서는 연간 합산 순이익이 처음으로 20조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가 은행장들의 재신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31일 종료된다.

현직 수장들은 실적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지만, 최근 발생한 보안 사고가 인사 평가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신한은행에서는 약 2만5000명의 고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으며, KB국민은행도 정밀 조사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가 기존 발표보다 크게 늘어난 2210명으로 확인됐다. 하나은행 역시 89명의 고객 정보가 새어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신한은행은 정보보호 관련 예산을 오히려 줄인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관리 책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금융감독원도 사고 책임을 금융회사 경영진 차원에서 따져보겠다는 태도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내부통제 기준 관리 의무와 관련해 이번 해킹 사건이 최초로 CEO의 책임을 묻고 다루는 사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 과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영향력이나 특정 인맥에 좌우되는 기존 인사 관행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8대 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재 금융지주 자회사 CEO의 승계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지배구조 개선방안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해 자회사 CEO 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다 강화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까지 맞물리면서 연말 인사에서 현 경영진의 상당수가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금융권에서 흘러나온다.

은행별 후임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먼저 후보군을 추린 가운데 KB금융과 우리금융도 11월 중 검증 절차를 진행해 12월 초·중순께 차기 수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정상혁 행장의 3연임 성사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2023년 취임한 뒤 한 차례 연임한 정상혁 행장은 실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걸림돌로 꼽힌다. 후임 후보로는 이봉재 기관·제휴영업그룹 부행장과 최혁재 AX혁신그룹 부행장이 거론된다. 이 부행장은 나라사랑카드 사업자 선정과 서울시·인천시 금고 운영권 확보에 기여한 영업 성과가 강점이다. 최 부행장은 디지털 혁신과 AI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신한금융의 주요 디지털 사업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하나은행은 이호성 행장의 재신임 여부와 새로운 인물의 발탁 가능성이 함께 거론된다. 후임 후보로는 김미숙 중앙영업그룹 부행장, 성영수 하나카드 대표, 남궁원 하나생명 대표, 김용석 하나캐피탈 사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김미숙 부행장이 선임될 경우 하나금융 역사상 첫 여성 은행장이 된다. 다만 하나은행은 과거 수장들이 대부분 한 차례 임기를 마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점에서 현직 행장의 연임이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우리은행은 정진완 행장의 재신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4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해킹에 따른 고객정보 유출을 피한 데다 3분기 실적도 개선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박종인 HR그룹 부행장과 이정수 우리금융 전략경영총괄 사장, 이해광 개인그룹 부행장 등도 차기 행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최종 인선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새 금융지주 회장 체제의 인사 방향이 중요한 변수다. KB금융은 지난 9월 양종희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거론되던 상황에서 이재근 전 KB국민은행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했다. 당시 변화와 세대교체 필요성을 강조했던 만큼 계열사 인사에도 이러한 기조가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환주 행장은 지난해 KB국민은행 순이익을 전년보다 18.8% 끌어올리며 리딩뱅크 탈환에 기여했지만 차기 회장 후보 경쟁에서 이재근 후보와 맞붙었던 이력이 있다. 1964년생으로 이 후보보다 두 살 많다는 점도 세대교체론과 맞물려 주목된다. 차기 행장 후보로는 김재관 KB국민카드 사장, 송병철 국민은행 디지털영업그룹 부행장,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 이종민 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부행장 등이 거론된다. 물론 이환주 행장이 연임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