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으로 유력한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의 사업비를 돌연 25% 증액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 투자 조건이 잇달아 바뀌는 데다 핵심 심의기구인 한미전략투자 운영위원회도 두 달 가까이 추가 회의를 열지 못하면서 대미 투자 실행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30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으로 유력한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총 사업비를 기존 200억달러 수준에서 250억달러로 약 25% 증액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미 간 막판 조율에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미국 측이 요구한 투자금액은 양국이 합의한 대미 전략투자 연간 한도인 200억달러를 넘어선다. 미국 측의 요구를 따를 경우 사업비 전액이 한국의 해당 연도 투자액으로 잡히게 할 수 있는지 등의 구조를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프로젝트부터 투자 규모와 집행 방식에 대한 추가 협상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갑작스럽게 증액을 요구하면서 ‘용수 문제’라는 점 외에는 자세한 이유를 한국에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미국은 지난 5월 한국 측에 대미 투자 프로젝트 리스트를 전달했고, 이후 최근까지 복합화력발전 프로젝트를 유력한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놓고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해왔다. 통상당국은 최근까지 해당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에 대한 검토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 측이 투자 조건을 갑자기 수정하면서 더욱 셈법이 복잡해진 상황이다.

이번 증액 요구는 그간 대미 투자 협의가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좀처럼 진척되지 못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30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대미 투자 사업을 심의하는 운영위는 지난 7월 2일 킥오프 회의를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추가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운영위는 산업통상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은 한미전략투자 사업관리위원회로부터 상업적 합리성 검토 결과를 보고받고, 사업 추진 의사를 심의 또는 의결하는 기구다. 첫 번째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다음달 발표하기 위해서는 운영위에도 안건이 상정돼 논의에 들어갔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투자 안건이 운영위 심의 단계까지 올라오지 못하면서 1호 사업 확정 절차도 본격화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안팎에 따르면 그간 미국 측이 제시하는 사업 후보와 조건도 수차례 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 검토됐던 복수의 사업들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떨어졌고, 한국이 제시한 몇 가지 프로젝트에는 미국이 시큰둥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논의 초기 단계부터 미국이 구체적인 프로젝트나 상세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지 않아 난항이 이어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향후 협상 과정에서도 이처럼 투자 조건을 바꾸는 이른바 ‘골대 옮기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미 간 대미 투자 협상은 애초부터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출발한 측면이 강했고,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일본이나 유럽연합(EU)보다 유리한 지위를 충분히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협상 초기 관세와 투자 문제를 패키지로 묶는 과정에서 미국이 정한 틀 안에서 대응하다 보니, 이후 투자 조건과 프로젝트 선정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수세적인 위치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는 넓지 않다. 미국은 대미 투자 문제 외에도 통상 압박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여전히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법 301조에 따른 과잉생산 관련 조사 결과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조사 결과 부과될 관세가 2.5%를 넘으면 한국은 한미 관세협상으로 확보한 상호관세 15%를 넘는 불리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최근 미국이 캐나다를 상대로 활용한 무역법 338조도 또 다른 잠재 압박 수단으로 거론된다. 338조는 미국 기업이나 상품이 해외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대통령이 상대국 상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미국이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나 쿠팡 등 미국계 기업과 관련한 제도적 갈등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문제로 연결할 경우 통상 압박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