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비트코인 시장에 새로운 매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기업들이 ‘영구 우선주’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최근 1년여 동안 약 13만6000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적인 배당 수익을 원하는 채권형 투자자들의 자금이 기업을 거쳐 비트코인 현물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구조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이 같은 투자 방식이 약 150조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시장과 비트코인 시장을 연결하는 새로운 수요 창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일(현지시각) 피델리티 디지털애셋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 보유 기업들이 영구 우선주(Perpetual Preferred Stock)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매입한 비트코인은 지난 5일 기준 총 13만5979개로 집계됐다. 이는 비트코인 최대 공급량인 2100만개의 약 0.65%에 해당하는 규모다.

영구 우선주는 일반적인 회사채와 달리 정해진 만기가 없는 증권이다. 투자자는 발행 조건에 따라 정기적인 배당을 받을 수 있지만 원금을 돌려받는 만기일은 없다. 발행 기업 입장에서는 보통주를 추가 발행하거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입하지 않고도 장기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보유 기업들은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배당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비트코인 매입에 투입한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직접 투자하지 않더라도 배당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이 결과적으로 현물시장 매수 수요를 형성하는 셈이다.

3개월간 70억달러 조달…비트코인 9만5000개 매입

피델리티에 따르면 영구 우선주를 활용한 비트코인 매입은 올해 들어 빠르게 확대됐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관련 기업들이 영구 우선주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70억달러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이 자금을 바탕으로 매입한 비트코인은 9만5000개 이상으로 집계됐다.

특히 4월에는 매입 규모가 급증했다. 피델리티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 주 동안 영구 우선주 발행과 연계된 비트코인 매입량이 약 3만개에 달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활동이 단기간에 대규모 현물 매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투자 방식은 비트코인 보유 전략으로 알려진 스트래티지(Strategy)가 선도했다. 스트래티지는 지난해 7월 첫 영구 우선주 상품을 출시하며 새로운 자금조달 구조를 도입했다. 이후 스트라이브(Strive) 등 다른 비트코인 보유 기업들도 유사한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비트코인 보유 기업들은 주로 보통주 발행이나 전환사채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 왔다. 반면 영구 우선주는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직접적으로 유발하지 않으면서 배당 수익을 선호하는 투자자층까지 자금조달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다만 기업이 배당 지급 부담을 지속적으로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자금조달 방식과 다른 위험도 존재한다.

피델리티 “150조달러 채권시장과 연결”…ETF와 다른 투자 수요

피델리티가 주목하는 부분은 영구 우선주가 기존 비트코인 투자상품과 다른 투자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월 미국에서 출시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은 첫해에만 88만8185개의 비트코인을 확보했다. 영구 우선주를 통한 매입 규모는 아직 현물 ETP에 미치지 못하지만 피델리티는 두 상품의 차이를 단순한 매입량보다 투자자 기반에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물 ETP가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영구 우선주는 정기적인 배당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델리티가 추산한 글로벌 채권시장의 규모는 약 150조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부 자금만 영구 우선주를 통해 비트코인 보유 기업으로 유입되더라도 새로운 매수 수요를 형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구 우선주가 제공하는 배당수익률이 일부 전통적인 현금성 투자상품의 수익률을 웃돌 수 있다는 점도 투자 유인으로 꼽힌다.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기업이 발행한 증권을 통해 정기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델리티는 지난 9월에도 영구 우선주를 비트코인 기반 디지털 신용상품의 한 형태로 평가하며 채권형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 대안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영구 우선주 투자자는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발행 기업의 배당 지급 능력과 재무 건전성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현물 투자와 차이가 있다.

비트코인 하락장에서는 배당 부담…지속 가능성이 관건

영구 우선주가 비트코인의 새로운 수요 기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자금조달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과 배당 지급 부담이다. 영구 우선주를 발행한 기업은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발행 조건에 따른 배당 의무를 부담한다. 비트코인 약세장이 장기화할 경우 보유 자산의 가치가 줄어드는 동시에 배당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배당 지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신규 우선주 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경우 영구 우선주를 통한 비트코인 매입 수요도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영구 우선주 신규 발행 규모와 실제 비트코인 매입으로 이어지는 자금의 비율이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성 자산이나 기존 채권상품 대비 배당수익률이 얼마나 경쟁력을 유지하는지도 투자 수요를 결정할 변수다.

피델리티는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시장의 수요 기반이 현물 ETP와 기업의 직접 매입을 넘어 전통적인 금융상품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다만 영구 우선주를 통한 자금 유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에서도 발행 기업들이 안정적인 배당 지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