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60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새로 조성하고 퇴직연금 기금화에 속도를 내면서 자산운용 업계에 600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정부와 기업이 직접 자금을 운용하는 대신 전문 운용사에 자산 배분과 투자를 맡기는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도 본격적인 성장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3일 기획예산처는 최근 발표한 미래대응기금과 관련해 여유 재원 약 97조원을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해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이 일부 자산을 자산운용에 위탁하는 방식을 본떠 법안을 만드는 안이 검토될 예정이다. 운용사 선정은 정부가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내놓으면 자산운용사 등이 제안서를 제출하고 운용 역량과 과거 실적 등을 평가받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10년간 내국세 증가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와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초과 세수 등을 기금에 적립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약 53조원은 청년·성장동력 등에 대한 사업 지출에 사용하고 12조5000억원가량은 국채 상환에 투입한다. 이를 제외한 여유 재원 약 96조9000억원은 전문운용기관을 통해 굴린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수익률은 국고채 3년물 금리인 연 3.8%를 웃도는 수준이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지난달 28일 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공무원들이 하는 게 아니라 전문 투자운용 기관을 지정해 운용할 것”이라며 “전문 투자운용 기관이 시장 상황을 보면서 결손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운용업계에서는 미래대응기금이 새로운 대형 OCIO 시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OCIO는 연기금이나 기업 등이 자산 배분부터 상품 선정, 위험 관리까지 자금운용 업무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외부 전문운용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증시안정기금이나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정부 주도 자금이 조성된 적은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은 성격이 다르다”며 “시장이 불안할 때 자금을 투입하는 안전판이라기보다 장기간 실제 운용하는 자금이라는 점에서 OCIO나 국민성장펀드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 기금은 민간 자금보다 운용보수가 낮아 수수료만 놓고 보면 수익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10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자금을 운용했다는 트랙레코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구체적인 운용사 선정안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연기금투자풀 OCIO에 참여한 대형 운용사들도 미래대응기금 운용사 선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말 5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이 운용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올 4분기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등을 포함한 수익률 제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은행·보험·증권 등 퇴직연금 사업자에 흩어져 있는 적립금의 운용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운용기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퇴직연금에 투자일임이 본격적으로 허용되면 OCIO 시장이 급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 퇴직연금 자금 가운데 OCIO로 흘러간 금액은 극히 일부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212조원 규모지만 OCIO로 운용되는 비중은 3.8%에 그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퇴직연금에 투자일임을 허용하는 것이 향후 OCIO 시장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산운용업계는 이미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확대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수수료 수익은 5조4989억원으로 전년보다 24.7% 증가했고, 당기순이익도 66.5% 늘어난 3조13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동안 ETF를 중심으로 개인투자자 자금이 자산운용업계의 성장세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수백조 원 규모의 기관 자금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