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라면 누구나 큰 수익을 꿈꾼다. 주가가 급등할 종목을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일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장을 이기는 수익을 5년, 10년 꾸준히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기간 투자 세계에서 살아남은 대가들이 대박보다 꾸준한 이익과 복리의 힘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8번째 주인공은 37년째 시장에서 살아남은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65)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와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체득했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보다 판단이 틀렸을 때에도 다시 도전할 여력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투자 철학이다.
최근 그가 주목하는 투자 기회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변화하는 산업 구조다. 반도체를 비롯해 전력·에너지, 바이오, K컬처, K푸드, 피지컬 AI까지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살피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장기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고 평가한다. 주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매도하기보다 기업의 경쟁력과 실적 개선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투자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9년이다. 서강대 독문과를 졸업한 뒤 당시 국민투자신탁에 입사한 그는 처음에는 채권운용부에 배치됐다. 이후 운용역 시험에 응시해 주식운용 업무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시장 상승과 하락을 경험했다. 주가가 급락하는 과정에서 투자신탁회사들이 과도한 차입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지켜봤다. 시장의 낙관론이 금융회사 전체의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체감한 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1997~1998년 외환위기다. 당시 서울투자신탁에서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던 그는 시장의 하락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했다. 주식을 전량 매도하는 대신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을 활용해 위험을 헤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가 운용한 ‘타겟4호 펀드’는 코스피 770선에서 설정됐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지수가 330선까지 추락했다. 시장이 절반 이상 무너졌지만 해당 펀드는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했다. 주식 포트폴리오의 시장 민감도를 계산해 선물 매도 규모를 조정하면서 하락 위험을 줄인 결과였다.
그는 시장을 무조건 낙관하거나 비관하는 태도를 모두 경계한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전망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맞춰 판단을 수정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1999년 코스모투자자문을 창업한 직후 닷컴버블이 찾아왔다. 인터넷과 정보기술(IT) 관련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자 투자 기회가 넘쳐난다고 판단해 레버리지를 확대했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외환위기 당시 위험을 관리했던 그도 시장의 열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유동성 관리와 분산투자, 레버리지 통제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이 투자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원칙은 분산이다. “한 종목에 확신이 생겼다고 전체 자산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투자 판단이 틀렸을 때에도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 인생에서 큰 이익을 얻은 기억보다 실패한 경험이 더 많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주변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급해질 때도, 시장의 열기에 휩쓸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걸지는 않았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본과 의지를 남겨두려 했다.
매수뿐만 아니라 매도 판단도 쉽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리츠 기업인 그러머시캐피털에 주당 1.85달러에 투자한 그는 5.4달러까지 주가가 오르자 지분을 매각해 원금의 두 배에 가까운 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블랙스톤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주당 27.5달러 수준으로 평가하자 너무 일찍 팔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같은 경험은 수익을 확정하는 것만큼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주가가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기보다 투자 아이디어가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오랜 기간 경쟁력을 입증한 기업이 과거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국면이라면 주가가 단기적으로 떨어진다고 서둘러 매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 주식을 향후 10년 동안 보유하면 100% 수익을 거두는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며 “10년에 두 배이면 20년이면 4배 이익인데, 굳이 다른 것을 찾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수십 년간 국내 증시를 대표해온 기업이다. 최 회장은 사업 규모가 큰 기업도 장기간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에 반도체 업황 회복과 AI 확산에 따른 수요 확대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물론 과거 성과가 미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경기순환적 특성이 강하고 AI 투자 확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확실하지 않다. 산업의 성장과 개별 기업의 주가 상승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장기 보유가 아니다. 기업 경쟁력과 실적 전망, 투자 아이디어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단기 주가 등락에 흔들려 너무 일찍 투자에서 이탈하면 장기 수익의 상당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최 회장이 바라보는 향후 10년의 투자 기회는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경쟁 구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수요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전력과 에너지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전력 공급과 냉각 설비의 중요성이 커진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가 에너지와 관련 인프라스트럭처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령화에 따른 바이오 산업의 발전 가능성도 관심 분야다. 고령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구조적 변화로, 의료 수요와 신약 개발, 건강 관련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K컬처와 K푸드 역시 한국 기업들이 가격 대비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다만 유망 산업을 찾는 것과 좋은 투자 대상을 고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지만 관련 기업에 투자한 모든 사람이 수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기술 성공이 특정 기업의 성공이나 주주 이익으로 자동 연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경쟁력과 현금 창출 능력, 기업이 만들어낸 가치가 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최 회장이 말하는 ‘달리는 말에서 내리지 마라’는 조언도 무작정 상승 종목을 추격하라는 뜻이 아니다. 처음 세운 투자 아이디어가 틀렸거나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했다면 매도를 검토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단기적인 주가 등락만으로 투자 판단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좋은 기업을 발견하는 안목과 그 기업의 성장이 실제 가치로 이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그리고 판단이 틀렸을 때 다시 도전할 여력을 남기는 위험 관리. 37년 투자 경험을 통해 최 회장이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대박을 좇기보다 끝까지 살아남아 계속 배우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