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학의 아버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가문에서, 관세전쟁 시대의 필독서를 쓴 경제 칼럼니스트가 나왔다. 우연일까, 가문의 유산일까.
올해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나서는 수마야 케인스 파이낸셜타임스(FT) 경제 칼럼니스트의 성은 실제로 그 케인스다. 부친은 작가인 랜들 케인스이며, 찰스 다윈은 직계 조상(5대조)이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의 에드먼드 역 배우 스칸다르 케인스가 친동생이라는 점은 덤. 경제학과 진화론, 두 지적 명가의 피가 한 사람에게 흐르는 셈이다.
피는 못속이는 것일까. 평생 자유무역을 신봉했던 J. M. 케인스는 대공황이 영국 경제를 덮친 1931년, 고용과 산업을 지키기 위해 공산품에 15% 관세를 물리자고 제안했다. 자유무역의 사도조차 위기 앞에서는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던 것. 그로부터 95년 뒤, 그의 후손은 관세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쓰고 있다.
혈통보다 눈여겨볼 것은 이력이다.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학·석사를 마친 그녀는 영국 재무부에서 경제분석가로, 재정연구소(IFS)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뒤 언론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코노미스트에서 8년간 일하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정책 논평으로 미국 비즈니스저널리스트협회(ABJ) 상을 받았다.
그녀는 무역 전문 팟캐스트 ‘트레이드 토크’를 공동 창설했으며, 2023년 7월 FT로 옮겨 간판 팟캐스트 ‘이코노믹스 쇼’를 진행하고 있다. 정책 현장에서 출발해 저널리즘으로 넘어온, 숫자를 읽을 줄 아는 기자다.
특히 올봄 그녀가 채드 보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전 미 국무부 수석이코노미스트)과 함께 낸 ‘무역전쟁에서 이기는 법(How to Win a Trade War)’은 출간 직후 이 분야의 화제작이 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놀라운 책’이라 했고,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와 팀 하포드가 잇따라 추천사를 붙였다.
책의 요지는 도발적이다. 규칙 기반 무역질서는 이미 무너졌으니, 무역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싸우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희토류 수출통제가 서방 자동차 생산을 멈춰 세울 수 있고, 첨단 반도체 수출규제가 AI 경쟁의 승자를 가를 수 있는 시대의 생존 지침서로 불리는 이유다.
‘무역전쟁에서 이기는 법’이 필요한 나라를 하나만 꼽으라면 관세에 수출을 저당 잡힌 한국일 것이다. 무역전쟁의 규칙은 무엇이고, 한국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케인스의 이름을 물려받은 통상 전문가의 진단을 오는 9일 세계지식포럼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